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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전각안내

고려 문종 33년(1079) 혜덕왕사 소현 화상이 대사구와 봉천원구, 광교원구 등 총 88당 711칸의 대가람으로 중창하였고, 산내 암자수만 40여곳에 이르렀다.  정유재란으로 전소되고 35년이 흐른뒤에서야 대사구지역만 일부 재건이 되었다. 현재는 35곳의 당우가 있다.


대사구 : 대적광전, 미륵전이 있는 본전으로서 기도와 법회가 이루어지던 곳

봉천원구 : 부도전 아래쪽에  큰스님들이 주석하던 곳으로서 또 하나의 금당을 짓고 노사나불을 모셨다.

광교원구 :  지금의 일주문 근처구역으로 유식에 관한 경전을 판각하여 인쇄하던 곳이다.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보제루 아래 서편으로 성보박물관이 있다. 

이 곳 성보박물관에는 금산사와 말사의 성보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금산사 봉천원 추정지역 출토유물 金山寺 奉天院 推定地域 出土遺物
Relics Excavated From Planning Site of
Bongcheonwon at Geumsansa Temple

고려, 수막새 지름 15, 금산사 성보박물관

금산사는 2007년 선방을 건립하기 위하여 고려시대 봉천원奉天院터를 발굴조사 하였다. 이곳에서  기와편 및 자기편, 배수시설 등이 출토되었다. 기단과 배수시설 사이에서는 ‘왕王’자명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이 막새기와는 고려 중기의 기와로 추정되는데, 막새면 전면에 귀면을 가득 새겼다. 미간에 작은 보주가 있고 치켜진 두 눈과 눈썹 위로 뿔을 새겼으며 그 안에 ‘왕’자를 양각하였다. 입은 좌우로 길게 벌어졌으며 입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나 있다. 이 유물들은 고려시대 봉천원을 조성했던 혜덕왕사 혹은 금산사지에 기록된 봉천원의 전각들 가운데 왕사각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교룡산성승장동인 蛟龍山城僧將銅印

Seal of General of Righteous Monk-Armies

조선 1592년 혹은 1593년 , 7.8×6.3×6.5
금산사 성보박물관,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7호
 

이 승장인僧將印은 뇌묵 처영에게 하사한 것으로 구리로 만든 도장이다. 뇌묵대사는 행주대첩 이후 교룡산성蛟龍山城 수축을 명받아 남원으로 이동하였다. 교룡산성의 승병장이 된 후 7개월만에 성을 크게 수축하여 호남 방어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산성별장山城別將임을 증명하는 의미로 이 도장을 새겨 보낸 것이다. 도장은 산성 내의 선국사善國寺 주지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다, 동학혁명군 김개남金開南이 교룡산성을 본거지로 활동할 때 유실한 것을 1960년 당시의 주지였던 보월寶月스님이 보제루普齊樓 마루 밑에서 발견했다고 전한다.




서고사 십육나한상 西固寺 十六羅漢像

Sixteen Arhats of Seogosa Temple

조선 1695년, 높이 50.3–54.3
금산사 성보박물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서고사 나한상은 2004년 7월경에 도난당했다가 2014년에 되찾았다. 훔친 후 다시 색을 칠해 교묘하게 다른 나한상처럼 보이게 했다. 이 나한상은 서고사 십육나한상 가운데 제3, 5, 14, 16존자로, 함께 발견된 발원문을 통해 숙종 21년(1695) 5월 23일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사는 문만영이 시주하고 수화승 성심性沈이 조성하였음이 밝혀졌다.

본래는 전라북도 부안면 선운리 백련사에 봉안한 것이다. 네 구의 나한상은 모두 바위 대좌에 앉아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거나 살짝 고개를 돌려 위를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비례 또한 안정적이다. 1695년이라는 정확한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확인되며 자연스러우면서 다양한 자세를 보여주는 나한상 가운데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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