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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점
보물 10점

국보 제62호 3층 미륵전, 보물 제476호였던 대적광전(화재로 보물해제), 보물 제827호 대장전, 보물 제22호 노주, 보물 제23호 석련대, 보물 제24호 혜덕왕사 진응탑비, 보물 제25호 오층석탑, 보물 제26호 방등계단, 보물 제27호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8호 당간지주, 보물 제29호 북강3층석탑, 보물 제828호 석등


국가 중요 사적 제496호, 국가 등록문화재 제619호 김제 금산사 석고미륵여래입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3호 김제 금산사 대장전 목조삼존불상과 광배

조사전, 나한전, 명부전, 보제루 등 총 30여동의 전각이 현존하고 있다.


보물금산사 혜덕왕사 진응탑비 (보물 제24호)



금산사 혜덕왕사 진응탑비 慧德王師眞應塔碑 (보물 제24호)

혜덕왕사 소현(1038-1096)은 고려시대의 고승으로 금산사의 중창주이다. 11세 때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법상종을 계승한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의 제자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 진표율사의 중건 이래 가장 큰 규모로 금산사를 중창하였다. 가람의 남쪽에 광교원을 설립하여 『법화현찬法華玄贊』, 『유식술기唯識述記』 등을 비롯한 장소章疏 32부 353권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096년 12월 18일 금산사의 봉천원에서 입적하였다. 숙종은 혜덕왕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탑호를 진응眞應이라 하여 탑비를 세웠다.

 글씨는 구양순법의 해서로 썼다.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어렵지만 당시 대표적인 문벌가인 인주이씨仁州李氏 이자연李子淵의 아들로서 왕사의 가계와 탄생 그리고 출가와 수행을 서술하고, 금산사에 광교원을 설치하여 유식 전적을 간행한 사실과 입적 후 재를 지낸 경비를 조정에서 지원한 내용이다. 그리고 음기陰記에는 왕사의 문도를 열거하였는데 승통僧統, 수좌首座, 삼중대사三重大師, 중대사重大師, 대사大師로 나누어 인명을 열거한 자가 110여 명이고 언급된 인명은 1천8백여 명에 이른다. 이 비의 음기는 고려시대 스님의 문도를 성격에 따라 구분한 예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고려 예종 6년(1111년)에 세운 것이다. 현재 탑비는 귀부와 비신만이 남아 있고 비의 머리부분은 결실되었다. 대리석의 비신은 높이 2.78m, 너비 1.5m로서 심하게 손상되어 비문은 판독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행히 『해동금석원』등에 그 내용이 전한다. 비문의 글씨는 약 2cm의 크기로 구양순의 해서체인데 활달하고 쾌적한 멋을 지녔다. 비의 앞면에 43행 77자씩으로 스님의 출생과 교화활동, 입적 등을 적었으며 그 둘레는 당초문으로 장엄했다. 서자(書者)와 찬자(纂者)의 이름은 판독할 수 없고 각자(刻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해동금석원』에 의하면 이오가 짓고 정윤(鄭允)이 썼으며 비음(碑陰)은 채추탄(菜推誕)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금속고』에서는 비음을 채추탄이 쓴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귀부는 방형의 지대석위에 놓였는데 신체는 장대하나 머리는 작은 편이다. 등에는 육각의 갑문(甲文)을 새기고 등위에 비신을 얹는 삽입부를 마련했다. 역동적인 발과 비늘의 표현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여 고려시대의 탑비 가운데 우수한 작품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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