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金山寺 彌勒殿 Maitreya Hall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부처님이 불국토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이요,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현재의 미륵전 전각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수문守文대사가 다시 지은 뒤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3층 불전으로 1·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각층마다 다른 현판이 걸려 있는데,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의 현판이 걸려 있다. 미륵전의 내부는 3층 전체가 뚫려 있는 통층이다. 중앙에 거대한 미륵삼존불상을 모셨다.

미륵전은 용화전, 산호전(山呼殿), 장륙전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을 지녔다. 지금도 특이하게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등의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다층의 사찰 건축으로서 미륵전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일찍이 삼국시대로부터 축적된 기술적, 미학적 아름다움은 국토 곳곳을 불국토의 장엄으로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미륵전의 내벽과 외벽에는 사이 사이에 수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보살과 신장 그리고 수도하는 모습 등 다양한 벽화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한편 오른쪽 벽에는 1890년(고종 27)에 조성한 제석천룡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용준(聳俊), 정선(定善), 오종(午從) 등의 금어(金魚)가 그렸는데,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불단 아래의 거대한 청동대좌는 정확한 조성시기를 알 수 없지만 잦은 소실과 복원의 과정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불상을 받들고 있는 역사의 대변자가 되는 셈이다.
본존불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 역시 손가락을 조금 오므렸지만 밖을 보이게 한 시무외인이다. 대개 미륵불은 다른 불상과 구별되는 별개의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 미륵불 본존은 높이가 11.82m이고 삼존불 중의 협시는 8.79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조성할 당시에는 3년간에 걸쳐 완성한 미륵장륙상 한 분만이 모셔졌었다. 그 뒤 조선시대에 수문대사가 다시 복원 조성하면서 소조 삼존불로 봉안했는데, 1934년에 실화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4년만인 1938년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이 석고에 도금한 불상을 다시 조성해 오늘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미륵본존은 거대한 입상이지만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본존불 양 옆의 협시보살은 왼쪽이 법화림(法花林) 보살이고, 오른쪽이 대묘상(大妙相) 보살이다. 협시보살 좌우에는 언제 봉안하였는지 모르는 또 다른 것이 2구가 있다. 본존의 협시보다 약간 작지만 역시 금을 입힌 소조상이다.

미륵전 법화림보살입상 복장유물 彌勒殿 法花林菩薩立像 腹藏遺物
Excavated Relics of Bodhisattva of Maitreya Hall
<조선 후기 후령통 높이 14.2, 지름 9>
미륵전 안에는 미륵불과 좌우보처로 법화림보살法花林菩薩과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像이 모셔져 있다. 미륵삼존불은 미륵전과 함께 정유재란 이후에 다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본존불은 일제강점기 때 실화로 소실되어 1938년 석고로 다시 조성된 것이다. 두 협시 보살상은 높이 8.79m로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대형 상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조화로운 신체비례를 보여주고 있다. 연꽃과 화염보주 등으로 장식되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팔찌와 가슴 양쪽의 천의 매듭에 화염보주형 장식을 하여 화려함을 더하였다. 2006년 7월 법화림보살상의 등에서 흙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오랜 장마로 법화림보살상의 미세균열 부위가 습기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보존처리 과정에서 보살상 내부에서 복장 유물이 수습되었다. 보살상의 정확한 제작시기나 제작자를 알려줄 발원문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후령통과 직물류, 산호·호박 등의 보석류 등이 확인되었다.
<보석과 오곡>

미륵전 벽화 彌勒殿 壁畫 Mural of Maitreya Hall, 조선 후기
금산사 미륵전에는 내·외벽에 벽화로 화려하게 장엄되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풍화로 인해 박락이 진행되어, 2009년부터 미륵전 벽화에 대한 보존처리가 이루어졌다. 훼손정도가 심한 2·3층 포벽 및 간벽 벽화는 보호틀 설치 후 벽에서 분리하여 보존처리 후 따로 수장하고 있다. 미륵전에는 건물 규모가 큰 만큼 많은 수의 벽화가 존재한다. 총 187점의 벽화가 확인되며, 벽화의 주제도 매우 다양하다. 불보살을 비롯하여 천인상, 나한상 등이 주로 등장하며, 또 일반 화훼, 화조도 및 산수화도 그려졌다. 바탕을 황토색으로 칠하고 석간주로 굵은 외곽선을 긋고, 분선分線과 묵선墨線으로 내곽선을 그은 다음 그 안에 그림을 그렸다.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金山寺 彌勒殿 Maitreya Hall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부처님이 불국토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이요,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현재의 미륵전 전각은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조선 인조 13년(1635)에 수문守文대사가 다시 지은 뒤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3층 불전으로 1·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각층마다 다른 현판이 걸려 있는데,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의 현판이 걸려 있다. 미륵전의 내부는 3층 전체가 뚫려 있는 통층이다. 중앙에 거대한 미륵삼존불상을 모셨다.
미륵전은 용화전, 산호전(山呼殿), 장륙전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을 지녔다. 지금도 특이하게 1층에는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등의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다층의 사찰 건축으로서 미륵전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일찍이 삼국시대로부터 축적된 기술적, 미학적 아름다움은 국토 곳곳을 불국토의 장엄으로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미륵전의 내벽과 외벽에는 사이 사이에 수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보살과 신장 그리고 수도하는 모습 등 다양한 벽화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한편 오른쪽 벽에는 1890년(고종 27)에 조성한 제석천룡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용준(聳俊), 정선(定善), 오종(午從) 등의 금어(金魚)가 그렸는데, 적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며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불단 아래의 거대한 청동대좌는 정확한 조성시기를 알 수 없지만 잦은 소실과 복원의 과정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불상을 받들고 있는 역사의 대변자가 되는 셈이다.
본존불은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 역시 손가락을 조금 오므렸지만 밖을 보이게 한 시무외인이다. 대개 미륵불은 다른 불상과 구별되는 별개의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 미륵불 본존은 높이가 11.82m이고 삼존불 중의 협시는 8.79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이다.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조성할 당시에는 3년간에 걸쳐 완성한 미륵장륙상 한 분만이 모셔졌었다. 그 뒤 조선시대에 수문대사가 다시 복원 조성하면서 소조 삼존불로 봉안했는데, 1934년에 실화로 일부가 소실되었다. 4년만인 1938년 우리나라 근대 조각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이 석고에 도금한 불상을 다시 조성해 오늘날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미륵본존은 거대한 입상이지만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본존불 양 옆의 협시보살은 왼쪽이 법화림(法花林) 보살이고, 오른쪽이 대묘상(大妙相) 보살이다. 협시보살 좌우에는 언제 봉안하였는지 모르는 또 다른 것이 2구가 있다. 본존의 협시보다 약간 작지만 역시 금을 입힌 소조상이다.
미륵전 법화림보살입상 복장유물 彌勒殿 法花林菩薩立像 腹藏遺物
Excavated Relics of Bodhisattva of Maitreya Hall
<조선 후기 후령통 높이 14.2, 지름 9>
<보석과 오곡>
미륵전 벽화 彌勒殿 壁畫 Mural of Maitreya Hall, 조선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