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금산사 =이성수 기자)
한마음으로 유지계승 발원
스님 생애 활동 유훈 담은
‘토끼뿔 거북털’ 전시 개막
귀일심원(歸一心源) 요익중생(饒益衆生)을 실천하며 불교와 인류사회에 희망의 등불을 밝힌 태공당 월주대종사의 1주기를 맞아 추모다례가 엄수됐다.
제17교구본사 금산사(주지 일원스님)는 7월11일 오전11시 대적광전에서 문도와 전국 각지에서 온 스님, 재가불자 등 10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동참한 가운데 월주대종사 1주기 추모다례를 봉행했다.
최근 며칠간 영상 35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1주기 다례가 엄수된 당일은 새벽에 내린 비로 기온이 30도에 머물렀다. 대종사의 1주기는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문도대표 도영 대종사(금산사 회주), 총무원장 원행스님,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 스님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일평생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삶을 사셨던 대종사님의 법학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시간이 지나도 제자들은 대종사의 모습이 한없이 떠오르기만 한다”면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사회 속에 불교의 가르침을 실현하시고자 하셨던 그 큰 원력의 빈자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고 대종사를 기렸다.
이어 총무원장 스님은 “불법은 항상 세간에 있음을 역설하셨고, 보현행원을 실천하며 대보살의 삶을 사셨다”면서 “한국불교사의 산증인으로서 지구촌의 미래를 앞서 걱정해주신 큰스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새삼 그립고, 후학들은 가르침을 되새기며 그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금산사 회주 도영 대종사는 문도대표 인사를 통해 “40년 전에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을 하시면서 종단뿐 아니라 사회를 맑혀야겠다는 마음으로 시민운동기구 대표를 맡으셨다”면서 “이제 우리 민족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탬을 주기 위해 지구촌공생회를 만들어 활동했다”고 회고했다.
도영대종사가 문도대표 인사를 하고 있다.
이어 도영 대종사는 “아쉽지만 스님께서 100세까지 사셨으면 틀림없이 노벨평화상을 받지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을 한다”면서 “항상 우리 스님의 뜻을 받들어 천분의 일이라도 실천하며 살겠다”고 밝혔다.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은 “무더운 날씨 은사스님의 다례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면서 “2주기 때는 (대종사의) 부도를 잘 모실 것을 약속드린다”고 인사했다.
대적광전 내부는 물론 앞마당에 마련한 천막들에도 사부대중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대종사의 1주기 다례에 동참했다. 대종사의 생전 활동 영상과 육성 법문이 나오자,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에 온 신도 심영순 씨는 “큰스님께서 홀연히 떠나신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좀처럼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지금도 (금산사) 만월당이나 영화사에 가면 큰스님을 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눈물을 훔쳤다.
전 금산사 주지 평상스님이 헌다를 하고 있다
전주에서 온 또 다른 신도는 “큰스님께서는 지구촌과 한국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신 커다란 어른으로 혼탁한 우리 시대에 등불을 밝힌 분”이라며 “지역 사회와 불교를 위해서도 세심하게 신경 쓰시고, 불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신 정이 많으셨다”고 회고했다.
군산에서 온 신도 김현서씨도 “생전에 큰스님을 가까이서 뵌 것만 해도 신앙생활에서 큰 영광스러운 시절이라 생각한다”면서 “열반에 드신지 1년이 됐는데, 꼭 곁에 계신 것 같은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은데, 스님을 잊지 않고, 보살행을 한 가지라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월주대종사 추모다례에는 금산사 회주 도영대종사, 총무원장 원행스님, 전 금산사 주지 평상스님,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 향봉스님, 지광스님, 평중스님,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 금산사 부주지 원혜스님, 서고사 주지 화평스님, 관음사 주지 덕림스님 등 상좌를 비롯해 손상좌와 증손상좌 등 태공문도회(太空門徒會) 문도들이 참석했다.
또한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암도대종사, 원로의원 법타대종사, 보선대종사, 원행대종사, 지명대종사, 중앙종회의장 정문스님, 교육원장 진우스님, 포교원장 범해스님, 소청심사위원장 동명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삼혜스님, 기획실장 법원스님 등 종단 집행부 스님들,전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스님도 참석해 대종사의 1주기를 기렸다. 이밖에도 조봉업 전북행정부지사, 정성주 김제시장과 금산사 본말사 신도들도 대거 참석해 대종사 유지 계승을 발원했다.
1주기 다례가 끝난후 처영문화기념관에서 월주대종사를 기리는 전시회 개막을 알리는 테이프 절단식이 거행됐다.
한편 제17교구 본사 금산사는 1주기 추모다례에 맞춰 ‘처용문화기념관’에서 월주대종사의 생애와 가르침을 생생하게 만나는 전시회를 시작했다. 대종사의 회고록 명칭이기도 한 ‘토끼뿔 거북털’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요익중생(饒益衆生), 동체대비(同體大悲), 세계일화(世界一花), 송백지절(松柏之節) 등 대종사의 생애를 주제와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구성했다.
평생 자비보살행을 실천한 월주 대종사의 생애를 판화로 표현한 박홍규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
* 태공당 월주대종사 행장
일제강점기인 1935년 전북 정읍(산외)에서 출생해 중동중학교와 정읍농고를 졸업했다. 보은 법주사에서 금오대선사를 은사로 출가해 구례 화엄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해 왜색불교 청산과 청정수행가풍 회복에 헌신하고, 제17교구본사 금산사 주지, 전북종무원장, 총무원 총무부장, 동국대 이사, 중앙종회 의장 등을 거쳐 제17대, 제28대 총무원장, 원로의원 등 종단의 주요 공직을 역임했다.
불교 가르침이 중생과 유리(遊離)돼서는 안 된다는 소신에 따라 대사회활동과 현실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솔선수범했다. 1980년 5월 무력으로 집권한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할 때 당국의 반대에도, 종단 대표자 자격으로 직접 방문해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시민을 위로했다.
1994년 종도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개혁불사를 성취한 후, 제28대 총무원장에 취임해 종단안정과 화합의 기조 위에서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전개해 한국불교 위상을 강화시키고 진로를 제시했다.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는 한국사회와 민족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민족서로돕기 상임공동대표 겸 이사장, (위안부 피해자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 이사장,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의장 겸 이사장, 대통령국토통일고문회의 고문, 실업극복국민공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사회고(社會苦)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총무원장 퇴임 후인 2003년에는 사단법인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자비행을 펼치는 국제구호 활동을 전개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국민훈장 모란장, 캄보디아 국왕 훈장, 미얀마 최고 작위(사따마 조디까다자), 조계종 포교대상, 만해대상, 민세상, 대원상 등을 수상 또는 수훈했다.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을 비롯해 <보살사상경구선집> <보살사상 보살정로> <인도성지순례기> <도심집> <태공(사진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 법문집)> 등의 저서를 저술했다.
대종사는 2021년 7월22일 오전 9시45분 제17교구본사 금산사 만월당에서 법랍 68년 세수 87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는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라는 내용의 게송을 전했다.
天地本太空(천지본태공)
一切亦如來(일체역여래)
唯我全生涯(유아전생애)
卽是臨終偈(즉시임종게)
喝!(할!),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이성수, 권태정 기자
(불교신문 금산사 =이성수 기자)
한마음으로 유지계승 발원
스님 생애 활동 유훈 담은
‘토끼뿔 거북털’ 전시 개막
귀일심원(歸一心源) 요익중생(饒益衆生)을 실천하며 불교와 인류사회에 희망의 등불을 밝힌 태공당 월주대종사의 1주기를 맞아 추모다례가 엄수됐다.
제17교구본사 금산사(주지 일원스님)는 7월11일 오전11시 대적광전에서 문도와 전국 각지에서 온 스님, 재가불자 등 1000여 명의 사부대중이 동참한 가운데 월주대종사 1주기 추모다례를 봉행했다.
최근 며칠간 영상 35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1주기 다례가 엄수된 당일은 새벽에 내린 비로 기온이 30도에 머물렀다. 대종사의 1주기는 삼귀의 반야심경 봉독에 이어 문도대표 도영 대종사(금산사 회주), 총무원장 원행스님,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 스님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일평생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삶을 사셨던 대종사님의 법학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시간이 지나도 제자들은 대종사의 모습이 한없이 떠오르기만 한다”면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사회 속에 불교의 가르침을 실현하시고자 하셨던 그 큰 원력의 빈자리는 더욱 커져만 간다”고 대종사를 기렸다.
이어 총무원장 스님은 “불법은 항상 세간에 있음을 역설하셨고, 보현행원을 실천하며 대보살의 삶을 사셨다”면서 “한국불교사의 산증인으로서 지구촌의 미래를 앞서 걱정해주신 큰스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새삼 그립고, 후학들은 가르침을 되새기며 그 뜻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금산사 회주 도영 대종사는 문도대표 인사를 통해 “40년 전에 깨달음의 사회화운동을 하시면서 종단뿐 아니라 사회를 맑혀야겠다는 마음으로 시민운동기구 대표를 맡으셨다”면서 “이제 우리 민족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탬을 주기 위해 지구촌공생회를 만들어 활동했다”고 회고했다.
도영대종사가 문도대표 인사를 하고 있다.
이어 도영 대종사는 “아쉽지만 스님께서 100세까지 사셨으면 틀림없이 노벨평화상을 받지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을 한다”면서 “항상 우리 스님의 뜻을 받들어 천분의 일이라도 실천하며 살겠다”고 밝혔다.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은 “무더운 날씨 은사스님의 다례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면서 “2주기 때는 (대종사의) 부도를 잘 모실 것을 약속드린다”고 인사했다.
대적광전 내부는 물론 앞마당에 마련한 천막들에도 사부대중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대종사의 1주기 다례에 동참했다. 대종사의 생전 활동 영상과 육성 법문이 나오자,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에 온 신도 심영순 씨는 “큰스님께서 홀연히 떠나신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니 좀처럼 믿겨지지 않는다”면서 “지금도 (금산사) 만월당이나 영화사에 가면 큰스님을 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눈물을 훔쳤다.
전 금산사 주지 평상스님이 헌다를 하고 있다
전주에서 온 또 다른 신도는 “큰스님께서는 지구촌과 한국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신 커다란 어른으로 혼탁한 우리 시대에 등불을 밝힌 분”이라며 “지역 사회와 불교를 위해서도 세심하게 신경 쓰시고, 불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신 정이 많으셨다”고 회고했다.
군산에서 온 신도 김현서씨도 “생전에 큰스님을 가까이서 뵌 것만 해도 신앙생활에서 큰 영광스러운 시절이라 생각한다”면서 “열반에 드신지 1년이 됐는데, 꼭 곁에 계신 것 같은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은데, 스님을 잊지 않고, 보살행을 한 가지라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월주대종사 추모다례에는 금산사 회주 도영대종사, 총무원장 원행스님, 전 금산사 주지 평상스님,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 향봉스님, 지광스님, 평중스님,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 금산사 부주지 원혜스님, 서고사 주지 화평스님, 관음사 주지 덕림스님 등 상좌를 비롯해 손상좌와 증손상좌 등 태공문도회(太空門徒會) 문도들이 참석했다.
또한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암도대종사, 원로의원 법타대종사, 보선대종사, 원행대종사, 지명대종사, 중앙종회의장 정문스님, 교육원장 진우스님, 포교원장 범해스님, 소청심사위원장 동명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삼혜스님, 기획실장 법원스님 등 종단 집행부 스님들,전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스님도 참석해 대종사의 1주기를 기렸다. 이밖에도 조봉업 전북행정부지사, 정성주 김제시장과 금산사 본말사 신도들도 대거 참석해 대종사 유지 계승을 발원했다.
1주기 다례가 끝난후 처영문화기념관에서 월주대종사를 기리는 전시회 개막을 알리는 테이프 절단식이 거행됐다.
한편 제17교구 본사 금산사는 1주기 추모다례에 맞춰 ‘처용문화기념관’에서 월주대종사의 생애와 가르침을 생생하게 만나는 전시회를 시작했다. 대종사의 회고록 명칭이기도 한 ‘토끼뿔 거북털’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요익중생(饒益衆生), 동체대비(同體大悲), 세계일화(世界一花), 송백지절(松柏之節) 등 대종사의 생애를 주제와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구성했다.
평생 자비보살행을 실천한 월주 대종사의 생애를 판화로 표현한 박홍규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
* 태공당 월주대종사 행장
일제강점기인 1935년 전북 정읍(산외)에서 출생해 중동중학교와 정읍농고를 졸업했다. 보은 법주사에서 금오대선사를 은사로 출가해 구례 화엄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했다.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해 왜색불교 청산과 청정수행가풍 회복에 헌신하고, 제17교구본사 금산사 주지, 전북종무원장, 총무원 총무부장, 동국대 이사, 중앙종회 의장 등을 거쳐 제17대, 제28대 총무원장, 원로의원 등 종단의 주요 공직을 역임했다.
불교 가르침이 중생과 유리(遊離)돼서는 안 된다는 소신에 따라 대사회활동과 현실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솔선수범했다. 1980년 5월 무력으로 집권한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할 때 당국의 반대에도, 종단 대표자 자격으로 직접 방문해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시민을 위로했다.
1994년 종도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개혁불사를 성취한 후, 제28대 총무원장에 취임해 종단안정과 화합의 기조 위에서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전개해 한국불교 위상을 강화시키고 진로를 제시했다.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는 한국사회와 민족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민족서로돕기 상임공동대표 겸 이사장, (위안부 피해자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 이사장,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의장 겸 이사장, 대통령국토통일고문회의 고문, 실업극복국민공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사회고(社會苦)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총무원장 퇴임 후인 2003년에는 사단법인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에서 자비행을 펼치는 국제구호 활동을 전개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 국민훈장 모란장, 캄보디아 국왕 훈장, 미얀마 최고 작위(사따마 조디까다자), 조계종 포교대상, 만해대상, 민세상, 대원상 등을 수상 또는 수훈했다.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을 비롯해 <보살사상경구선집> <보살사상 보살정로> <인도성지순례기> <도심집> <태공(사진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 법문집)> 등의 저서를 저술했다.
대종사는 2021년 7월22일 오전 9시45분 제17교구본사 금산사 만월당에서 법랍 68년 세수 87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는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라는 내용의 게송을 전했다.
天地本太空(천지본태공)
一切亦如來(일체역여래)
唯我全生涯(유아전생애)
卽是臨終偈(즉시임종게)
喝!(할!),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이성수, 권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