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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남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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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사 南固寺

주소 :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53-88 (동서학동 2가 724)
전화 : 286-9640


  남고사(南固寺)는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2가 724번지 고덕산(固德山)에 자리 잡고 있다. 절이 자리한 고덕산은 일명 남고산이라도 하며, 절 가까이에 남고산성이 있다. 남고산성은 사적 제294호로서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되었는데 고덕산성이라고도 한다. 현재 성내에는 남고사를 비롯해서 관성묘(關聖廟)ㆍ남고진사적비(南固鎭事蹟碑) 등의 유적이 있다.
서향(西向)인 절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전주 시가지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고, 다시 시선을 위로하면 멀리 완산칠봉(完山七峰)이 펼쳐져 있어 전망이 매우 좋다. 이 같은 경치를 즐기기 위해 절 주위의 절벽에 천경대ㆍ만경대ㆍ억경대 등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전주 8경’가운데 하나로 ‘해질녘 남고사의 종 치는 광경(南固경)’을 꼽기도 한다. 현재의 가람은 전라북도기념물 제72호 남고사지의 옛 절터 위에 세워졌다.


 절의 창건은 686년(문무왕 8) 보덕대사(普德大師)의 제자인 명덕(明德)스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보덕 대사는 고구려 스님으로서 열반종의 개조였으므로 남고사도 열반종과 밀접한 관련을 지녔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때의 이름은 남고연국사(南高燕國寺)로서 나중에 ‘연국(燕國)’이라는 말이 없어지고 남고사(南高寺)가 되었다. ‘연국’은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산성 안에 위치한 사찰에 그렇게 붙여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1980년 절 경내에서 소형 금동불이 출토된 바 있다.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불상은 10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친 시기에 절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남고사(南高寺)를 한자만 달리하여 지금처럼 ‘南固寺’로 기록하였다. 이렇게 절 이름 중 가운데 글자가 ‘高’에서 ‘固’로 바뀐 정확한 이유와 시기는 잘 알 수 없지만, 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이 산성을 쌓고, 동서남북의 네 곳에 사고사찰(四固寺刹)을 지었다는 이야기와 연관시켜 추정하기도 한다. 견훤이 전주의 동서남북 사방을 진압하기 위해서 사고사찰을 지어 그 이름을 동고사ㆍ서고사ㆍ남고사ㆍ북고사로 했다는 것이다. 또한 산성을 축조하여 견휜산성이라 불렀는데, 절이 자리한 고덕산의 남고산성이 바로 그 견훤산성이라 불렀는데, 절이 자리한 고덕산의 남고산성이 바로 그 견훤산성이라고 한다. 또한 1779년(정조 3)에 편찬된 『사찬읍지(私撰邑誌)』에도, ‘남고사는 만경대(萬景臺) 뒤에 자리하며, 부(付) 동남쪽 10리에 있다.’고 되어 있어 『여지도서』의 기록과 비교된다. 그 뒤부터 근대 이전의 연혁은 잘 알 수 없는데, 1881년(고종 18) 한 차례 중건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1907년(융회 1) 영산회상도와 신중탱화를 봉안하였고, 1908년 지장탱화를 봉안하였다.


 근래 들어 1970년 사천왕문을 지었고, 1979년에서 1981년에 걸쳐 대웅전을 중건했다. 1982년 삼성각에 독성ㆍ칠성ㆍ산신탱화를 모셨고, 1984년 삼성각, 이듬해에는 관음전을 각각 지었다. 그 뒤 1993년 화재가 나서 1680년(숙종 6)에 지은 관음전과 1990년 무렵에 지은 요사가 모두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1995년 관음전을 인법당 형태로 중건하였고, 아미타불상과 지장탱화ㆍ신중탱화를 봉안하였다. 또한 이듬해에는 목조 관음보살상을 봉안했다. 현재는 노선 도정(老仙道正) 주지스님이 주석하면서 가람을 가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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