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푸르고, 여름 햇살은 뜨겁고, 산과 들은 짙푸릅니다. 실상사 마당의 붉은 백일홍은 올해도 저리 붉고 환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높습니다. 조실스님이 가셨는데도요.
조실스님!
실상사 찾아오셔서 지금 이 자리 선재집 완공을 기뻐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무엇이 그리 바쁘셨는지요? 사바인연의 속절없음을 깨우쳐 주려 그리 불현듯 가셨는지요? 올 가을에는 이곳 선재집에서 스님을 모시고 여는 잔치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영정 속 해맑은 모습으로 스님을 모시게 되다니, 아직도 마음이 황망합니다. 다시 뵙게 되면 드리고 싶은 말씀도 마음에 가득 담아놨는데, 이제 어떡하지요?
조실스님!
스님을 처음 뵈었던 40년 전을 기억합니다. 저는 작은 암자에 머물던 인연으로 스님께 며칠 동안 공양을 올렸지요. 그때는 스님이 누구인지 왜 그곳에 오셨는지도 몰랐습니다. 단지 힘든 일이 있어서 잠깐 쉬었다 가시는 분이라고만 알았습니다. 훨씬 뒤에야 그때가 10.27법난 이후였고, 당시 총무원장으로서 고초를 겪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올린 공양은 부끄럽게도 불교초심자 스무 살 애기보살이 올린 거칠기 짝이 없는 공양이었습니다. 지금 그 밥상을 생각하면 정말 민망하고, 드셔주신 스님이 감사할 뿐이지요. 그래서인지 실상사에 오실 때마다 “실상사 된장국이 최고”라면서 소박한 밥상을 기쁘게 받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제게 큰 기쁨이었어요. 스님은 그런 제 마음을 아셨을까요?
제가 스님에 대해 더욱 놀랐던 것은, 오랜 후에 실상사에서 스님을 다시 뵈었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시절, 그것도 잠시 스쳐간 인연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뵙게 되면 될수록 그런 놀라움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실상사가 하는 일에 늘 깊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오실 때마다 화엄학림을 비롯하여 귀농학교, 작은학교, 한생명, 생명평화대학 등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에 대해 세세히 묻곤 하셨지요. 오랜만인데도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예전에 해드린 이야기들을 잘 기억하고 계신 것이 정말 놀라웠지요. 정말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실텐데 말이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아, 스님은 스쳐가는 바람도 허투루가 아니라 지중한 인연임을 알고 살아가시는가. 이 또한 천눈천손의 삶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제게 스님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조실스님!
스님은 스님께서 하고 있는 여러 활동에 대해 자랑도 많이 하셨지요. 특히 지구촌공생회에서 하던 ‘우물파기사업’과 ‘학교설립’에 대해 설명하실 때 그 표정, 그 모습이 생각납니다. 정말 천진동자 같아서 보고 듣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었어요.
어느 해인가 스님 활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실상사 대중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우물파기사업에 쓰시라고 500만원을 드렸습니다. 그때, 아주 기뻐하시면서 “실상사에서 주는 500만원은 다른 곳에서 주는 5천만 원보다 훨씬 값지다”고 하셨던 말씀은, 우리에게 또 얼마나 큰 격려였는지요.
조실스님!
오늘, 스님의 3재를 맞아 되돌아보니 저희 실상사사부대중이 스님과 함께 해온 30여 년은 정말 복된 인연이었습니다. 실상사가 하는 일에 대한 조실스님의 공감과 지지, 격려와 협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실상사가 있음을 더욱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잘 살펴보면, 실상사가 해온 모든 활동은, 스님께서 일찍이 원을 세우고 행하신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과 ‘이타적 보살행’을 현장의 삶으로 구체화한 것입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을 가꾸는 천일결사’도 그 뜻을 더욱 넓고 깊게 계승하기 위한 정진이지요. 조실스님께서 끌어주시고, 때로는 저희가 길을 닦고, 함께 어울려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처럼, 조실스님!
스님은 이제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또한 함께 계심을 압니다.
모든 생명이 인드라망으로 연결된 생명공동체임을 직시할 때, 스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도량, 깨달음이 일상의 삶으로 구현되는 도량으로 실상사를 가꾸어갈 때, 스님은 함께 계십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그렇게 스님과 함께 하면서 스님의 뜻을 기리고 은덕에 보답하겠습니다.
시대의 원력보살로 우리에게 오신 조실스님!
굳이 이 사바세계에 생명평화의 빛으로 다시 오시라 청하지 않아도, 다시 오심을 믿습니다.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는 자비의 연꽃 향기가 피어나는 곳, 스님이 거기 계신 줄 알겠습니다. 그 향기를 알아차릴 수 있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어울려 살아가는 우주 삼라만상을 다 담은, 인드라망 생명평화무늬 앞에서 스님의 해맑은 얼굴이 더욱 빛납니다.
고맙고, 고맙고, 고맙습니다.
구산선문최초가람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마을절
실상사 사부대중을 대표하여 수지행 올림
하늘은 푸르고, 여름 햇살은 뜨겁고, 산과 들은 짙푸릅니다. 실상사 마당의 붉은 백일홍은 올해도 저리 붉고 환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높습니다. 조실스님이 가셨는데도요.
조실스님!
실상사 찾아오셔서 지금 이 자리 선재집 완공을 기뻐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무엇이 그리 바쁘셨는지요? 사바인연의 속절없음을 깨우쳐 주려 그리 불현듯 가셨는지요? 올 가을에는 이곳 선재집에서 스님을 모시고 여는 잔치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영정 속 해맑은 모습으로 스님을 모시게 되다니, 아직도 마음이 황망합니다. 다시 뵙게 되면 드리고 싶은 말씀도 마음에 가득 담아놨는데, 이제 어떡하지요?
조실스님!
스님을 처음 뵈었던 40년 전을 기억합니다. 저는 작은 암자에 머물던 인연으로 스님께 며칠 동안 공양을 올렸지요. 그때는 스님이 누구인지 왜 그곳에 오셨는지도 몰랐습니다. 단지 힘든 일이 있어서 잠깐 쉬었다 가시는 분이라고만 알았습니다. 훨씬 뒤에야 그때가 10.27법난 이후였고, 당시 총무원장으로서 고초를 겪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올린 공양은 부끄럽게도 불교초심자 스무 살 애기보살이 올린 거칠기 짝이 없는 공양이었습니다. 지금 그 밥상을 생각하면 정말 민망하고, 드셔주신 스님이 감사할 뿐이지요. 그래서인지 실상사에 오실 때마다 “실상사 된장국이 최고”라면서 소박한 밥상을 기쁘게 받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제게 큰 기쁨이었어요. 스님은 그런 제 마음을 아셨을까요?
제가 스님에 대해 더욱 놀랐던 것은, 오랜 후에 실상사에서 스님을 다시 뵈었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시절, 그것도 잠시 스쳐간 인연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뵙게 되면 될수록 그런 놀라움은 더 커져만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실상사가 하는 일에 늘 깊은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오실 때마다 화엄학림을 비롯하여 귀농학교, 작은학교, 한생명, 생명평화대학 등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에 대해 세세히 묻곤 하셨지요. 오랜만인데도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예전에 해드린 이야기들을 잘 기억하고 계신 것이 정말 놀라웠지요. 정말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실텐데 말이죠.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아, 스님은 스쳐가는 바람도 허투루가 아니라 지중한 인연임을 알고 살아가시는가. 이 또한 천눈천손의 삶일지도 모르겠다고요. 제게 스님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조실스님!
스님은 스님께서 하고 있는 여러 활동에 대해 자랑도 많이 하셨지요. 특히 지구촌공생회에서 하던 ‘우물파기사업’과 ‘학교설립’에 대해 설명하실 때 그 표정, 그 모습이 생각납니다. 정말 천진동자 같아서 보고 듣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모습이었어요.
어느 해인가 스님 활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실상사 대중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우물파기사업에 쓰시라고 500만원을 드렸습니다. 그때, 아주 기뻐하시면서 “실상사에서 주는 500만원은 다른 곳에서 주는 5천만 원보다 훨씬 값지다”고 하셨던 말씀은, 우리에게 또 얼마나 큰 격려였는지요.
조실스님!
오늘, 스님의 3재를 맞아 되돌아보니 저희 실상사사부대중이 스님과 함께 해온 30여 년은 정말 복된 인연이었습니다. 실상사가 하는 일에 대한 조실스님의 공감과 지지, 격려와 협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실상사가 있음을 더욱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잘 살펴보면, 실상사가 해온 모든 활동은, 스님께서 일찍이 원을 세우고 행하신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과 ‘이타적 보살행’을 현장의 삶으로 구체화한 것입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미혹의 문명을 넘어 깨달음의 문명을 가꾸는 천일결사’도 그 뜻을 더욱 넓고 깊게 계승하기 위한 정진이지요. 조실스님께서 끌어주시고, 때로는 저희가 길을 닦고, 함께 어울려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처럼, 조실스님!
스님은 이제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또한 함께 계심을 압니다.
모든 생명이 인드라망으로 연결된 생명공동체임을 직시할 때, 스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지금 여기에서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도량, 깨달음이 일상의 삶으로 구현되는 도량으로 실상사를 가꾸어갈 때, 스님은 함께 계십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그렇게 스님과 함께 하면서 스님의 뜻을 기리고 은덕에 보답하겠습니다.
시대의 원력보살로 우리에게 오신 조실스님!
굳이 이 사바세계에 생명평화의 빛으로 다시 오시라 청하지 않아도, 다시 오심을 믿습니다.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는 자비의 연꽃 향기가 피어나는 곳, 스님이 거기 계신 줄 알겠습니다. 그 향기를 알아차릴 수 있는 우리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어울려 살아가는 우주 삼라만상을 다 담은, 인드라망 생명평화무늬 앞에서 스님의 해맑은 얼굴이 더욱 빛납니다.
고맙고, 고맙고, 고맙습니다.
구산선문최초가람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마을절
실상사 사부대중을 대표하여 수지행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