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일원 사적 제 496호로 지정
천년고찰 '금산사(金山寺)'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96호로 지정
금산사는(주지 원행) 18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금산사 일대 105필지 20만2304㎡를 사적 제496호로 지정받았다.
문화재청은 "금산사는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호국사찰로 역사적·문화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이유를 밝혔다.
이번 사적지정으로 국보62호 미륵전등 문화재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 그리고 활용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산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독특하게 3원체계(광교원구, 대사구, 봉천원구)를 유지해오다 정유재란때 소실되었었는데 옛 문화유적에 대한 발굴 작업을 재개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금산사는 1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백제 법왕1년에 창건된 사찰로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에 의해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중창되었고, 고려 문종때 혜덕왕사에 의해 3원 체계를 형성하고 83개의 전각과 40여개의 암자를 두었던 큰 사찰 이었다. 이후 임진왜란때 뇌묵처영대사의 승병활동으로 김제 금구등지에서 왜적을 소탕하는 등 호국불교의 기치를 드 높였으나 정유재란때 외적들의 보복으로 금산사 전각을 비롯한 암자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조선인조때 수문대사의 노력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교원구廣敎院區 : 불서간행과 교육을 담당했던 구역으로 현재 공원 및 야영장 부근이다.
보광명전, 설법전, 축리루, 진표영당, 해동육조영당등이 있었다.
대사구大寺區 : 금산사 중심을 이루던 구역으로 조선인조때 대사구지역만 복원하여 현재의 도량으로 이어져 오고있다.
해장전, 극락전, 능인전, 문수전, 보현전, 원통전, 미륵수계전, 지장수계전등이 있었다.
봉천원구奉天院區 : 큰스님들이 주석하던 구역으로 현재 부도전 부근이다.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도솔전, 칠성전, 종각, 왕사각 등이 있었다.
천년고찰 '금산사(金山寺)'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96호로 지정
금산사는(주지 원행) 18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금산사 일대 105필지 20만2304㎡를 사적 제496호로 지정받았다.
문화재청은 "금산사는 미륵신앙을 대표하는 호국사찰로 역사적·문화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이유를 밝혔다.
이번 사적지정으로 국보62호 미륵전등 문화재의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 그리고 활용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산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독특하게 3원체계(광교원구, 대사구, 봉천원구)를 유지해오다 정유재란때 소실되었었는데 옛 문화유적에 대한 발굴 작업을 재개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금산사는 14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백제 법왕1년에 창건된 사찰로 통일신라시대 진표율사에 의해 미륵신앙의 본산으로 중창되었고, 고려 문종때 혜덕왕사에 의해 3원 체계를 형성하고 83개의 전각과 40여개의 암자를 두었던 큰 사찰 이었다. 이후 임진왜란때 뇌묵처영대사의 승병활동으로 김제 금구등지에서 왜적을 소탕하는 등 호국불교의 기치를 드 높였으나 정유재란때 외적들의 보복으로 금산사 전각을 비롯한 암자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조선인조때 수문대사의 노력으로 재건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교원구廣敎院區 : 불서간행과 교육을 담당했던 구역으로 현재 공원 및 야영장 부근이다.
보광명전, 설법전, 축리루, 진표영당, 해동육조영당등이 있었다.
대사구大寺區 : 금산사 중심을 이루던 구역으로 조선인조때 대사구지역만 복원하여 현재의 도량으로 이어져 오고있다.
해장전, 극락전, 능인전, 문수전, 보현전, 원통전, 미륵수계전, 지장수계전등이 있었다.
봉천원구奉天院區 : 큰스님들이 주석하던 구역으로 현재 부도전 부근이다.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도솔전, 칠성전, 종각, 왕사각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