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수 74. 총무원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월주스님이 20여명의 스터디투어단을 이끌고 지난 22일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새해 첫 달을 주석처인 김제 금산사나 서울 영화사에서 편안히 보낼 수도 있지만 스님은 고달픈 원행(遠行)을 택했다. 평생을 종단의 개혁과 불교의 사회화를 위해 정진해 온 스님이고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사회원로로서 대표적인 위치에 있는 스님의 염화실은 고통 받는 중생이 머무는 ‘시방세계’라고 표현이 것이 적절할 것 같다. 6박8일의 원행을 10여일 앞둔 지난 10일 서울 영화사에서 스님과 차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3년 전 수행기자로서 지켜봤을 때와 달라진 것은 총무원장으로서의 일정이 없는 정도였다. “수행과 실천은 새의 양 날개와 같지요” 실천없는 깨달음과 지혜는 의미 크지 않아 이타행 통해 무한한 우주법계와 하나돼야 <사진설명> 금산사 회주 월주스님은 ‘보살도를 행하지 않으면 불교가 아니다’는 은사 금오스님의 가르침대로 자비이타행을 평생 펼쳐오고 있다. 스님은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 선생 기념사업회 초청강연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 사이였다. 주제는 ‘나눔이 희망이다’. ‘보살도를 행하지 않으면 불교가 아니다’는 은사(금오스님)의 가르침대로 스님은 자비.이타행이 이 시대 수행자가 해야 할 사명임을 늘 강조한다. 바로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이다. “일체는 각각 돌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로 돌아가면서 근본자리로 들고나기 때문에 내 몸 아닌 게 없고 내 아픔 아닌 게 없고 안과 밖의 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지혜를 얻어 자성을 깨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덜어주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며 깨끗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 시대의 수행자, 불자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스님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94년 총무원장이 된 후에는 이 같은 신념을 종단차원으로 확대하기 위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불교사상을 접목시킨 철학이 바로 이 운동인데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취임당시 5군데에 불과하던 복지시설이 재임기간 동안 50여 곳으로 늘어났다. 지금 개별사찰에서 운영하는 시설까지 합치면 각종 복지시설이 500여 곳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 연말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방재를 위해 나선 불자들의 자원봉사행렬을 보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나눔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구휼정신이며 공동체 정신인 두레문화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큰 재난을 만나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열심히 나눔과 자원봉사 활동에 동참하지만 평소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은 개인 기부가 전체의 80%를 차지하는데 우리는 기업의 기부가 67%고 개인의 기부는 16%밖에 안됩니다” 이 같은 수치까지 일일이 기억하는 스님이기에 염화실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인도 동북부인 비하르지역을 중심으로 수행과 전법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였다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고통 받는 중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동체대비행을 펼쳤을 것입니다.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받아들이고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여 나눔을 활성화한다면 그 자체가 ‘세상은 나와 한 뿌리요 모든 존재는 나와 더불어 하나(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임을 자각한 참살이일 것입니다. 진리와 더불어 항시 살아있는 현실 가운데서 구현되는 보살행 즉 이타행(利他行)을 통해 무한한 대우주법계와 하나가 되도록 나아가야 합니다” 스님은 대표이사로 있는 지구촌공생회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인, 해외활동가등 모든 도반들에게 이같은 내용의 새해 인사를 전했다. ‘요익중생’을 서원하는 이들이 더욱 더 넘쳐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이다.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프리카의 케냐와 비슷하고 가나의 30배, 아르헨티나의 5분의1밖에 안됐습니다. 지금은 가나의 30배, 아르헨티나의 2배에 이르고 있는데 이렇게 성장한 데는 국제개발기구의 협력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본부를 통해 북녘동포를 돕는데 앞장섰던 스님이 지구촌공생회라는 국제구호단체를 만들어 각종 구호사업을 펼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캄보디아에서 우물설치 사업을 펼치기 전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 받던 어린이들이 80%였는데 우물이 설치돼 식수혜택을 본 지역에서는 오히려 80%의 어린이들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생명의 우물’이 된 셈이다. 어려울 때 외국의 원조를 받아서 이만큼 잘살게 된 만큼 빈곤국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비용이 우리의 10분의 1이면 족하다고 한다. “일일생활권이 된 지구촌에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9억 명이 넘는 데 개발도상국에 대한 우리 한국의 공적재발원조(ODA)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인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유럽을 다니면서 나눔에 대한 인식이 체질화되어 있는데 큰 감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조차 우리 불교계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오직 자기 수행에만 푹 빠져있는 이들은 깨닫거나 지혜를 얻지 못한 채 중생구제에 나서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안목 없이 중생구제에 나섰다가 자칫 중생을 오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수행으로 지혜를 얻은 연후에 자비실천(보현행)에 나서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인의 수행과 중생의 고통을 나누려는 노력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설명했다. “수행과 실천은 새의 양 날개와 같은 것입니다. 자비의 실천만 앞세우고 수행을 등한시하면 맹목이 될 수 있고, 수행으로 지혜를 얻었다 해도 중생들의 고통을 외면하면 머리와 가슴만 있고 발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비의 실천 없는 깨달음이나 지혜는 의미가 크지 못합니다. 수행지상주의에 빠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구도의 본질은 이타행에 있으니 보현행을 함으로써 보리(菩提)를 얻고 더 나아가 해탈할 수 있다는 신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정치가 잘못 흘러가고 경제가 엉망이 되어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하는 이럴 때일수록 종교 특히 불교만이라도 기쁨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법을 전하라’는 전도선언을 실천하려는 강한 신념이 느껴진다. 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월주스님과 지구촌공생회 / 지구촌공생회(www.goodhands.or. kr)는 북한과 제3세계 빈곤국가에 대한 구호 및 지원활동을 펼치기 위해 지난 2004년 2월 창립한 국제구호단체다. 28세에 교구본사인 금산사 주지, 30대에 총무원 교무부장, 45세 군사정권에 맞선 최연소 총무원장 다시 1994년 개혁종단의 총무원장. 경실련 공동대표, 지역감정국민운동협의회 공동회장 등 수십 개 단체의 대표를 역임하고 지금까지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와 복지법인 나눔의 집 이사장 등의 소임을 맡으며 축적해 온 포교 교육 가람수호 복지 시민운동의 노하우가 그대로 담겨 있다. 50여년 부단한 수행력으로 국경 없는 국제구호단체 결성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실천 초기불교시대에 사회적 유대감을 함양하기 위해 강조한 가르침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자비희사(慈悲喜捨) 이 네 가지의 한량없는 마음을 이웃과 나누기 위한 국경 없는 지구촌공생회다. 지난 한 해 활동만 해도 눈을 의심할 정도로 활발하고 다양하다. 후원자들의 보시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국제협력단(KOICA), 환경재단, 경기도청, 불국사, 화계사 등의 지원에 힘입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몽골, 라오스, 케냐 등 6개국에 식수공급사업과 유치원, 초등학교 건립, 도서관 운영 등 교육사업, 국내 독거노인 생활보조비 지원, 북한 돕기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여기서도 항상 주춧돌 역할을 해 주는 곳은 금산사와 영화사다. 때문에 스님은 김제 금산사와 서울 영화사를 오가며 법문하고 ‘아직 걸음마 단계인 지구촌공생회’를 거의 매일 챙기다시피 한다.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 그 어느 곳에서라도 실천행이 시작되는 그 순간 누구라도 기쁨을 느끼지 않겠는가?” ‘요익중생’의 굳은 신념이 있기에 스님의 팔순 때쯤 염화실을 찾으려면 지구촌 곳곳을 찾아 다녀야 할 것 같다. ☞ 출처 : 불교신문 : http://www.buddhistnews.net/
올해 세수 74. 총무원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월주스님이 20여명의 스터디투어단을 이끌고 지난 22일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새해 첫 달을 주석처인 김제 금산사나 서울 영화사에서 편안히 보낼 수도 있지만 스님은 고달픈 원행(遠行)을 택했다. 평생을 종단의 개혁과 불교의 사회화를 위해 정진해 온 스님이고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사회원로로서 대표적인 위치에 있는 스님의 염화실은 고통 받는 중생이 머무는 ‘시방세계’라고 표현이 것이 적절할 것 같다. 6박8일의 원행을 10여일 앞둔 지난 10일 서울 영화사에서 스님과 차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3년 전 수행기자로서 지켜봤을 때와 달라진 것은 총무원장으로서의 일정이 없는 정도였다. “수행과 실천은 새의 양 날개와 같지요” 실천없는 깨달음과 지혜는 의미 크지 않아 이타행 통해 무한한 우주법계와 하나돼야 <사진설명> 금산사 회주 월주스님은 ‘보살도를 행하지 않으면 불교가 아니다’는 은사 금오스님의 가르침대로 자비이타행을 평생 펼쳐오고 있다. 스님은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 선생 기념사업회 초청강연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 사이였다. 주제는 ‘나눔이 희망이다’. ‘보살도를 행하지 않으면 불교가 아니다’는 은사(금오스님)의 가르침대로 스님은 자비.이타행이 이 시대 수행자가 해야 할 사명임을 늘 강조한다. 바로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이다. “일체는 각각 돌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로 돌아가면서 근본자리로 들고나기 때문에 내 몸 아닌 게 없고 내 아픔 아닌 게 없고 안과 밖의 문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지혜를 얻어 자성을 깨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덜어주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며 깨끗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 시대의 수행자, 불자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스님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94년 총무원장이 된 후에는 이 같은 신념을 종단차원으로 확대하기 위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불교사상을 접목시킨 철학이 바로 이 운동인데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취임당시 5군데에 불과하던 복지시설이 재임기간 동안 50여 곳으로 늘어났다. 지금 개별사찰에서 운영하는 시설까지 합치면 각종 복지시설이 500여 곳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다. 뿐만 아니다. 지난 연말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방재를 위해 나선 불자들의 자원봉사행렬을 보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이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나눔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구휼정신이며 공동체 정신인 두레문화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큰 재난을 만나거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열심히 나눔과 자원봉사 활동에 동참하지만 평소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미국은 개인 기부가 전체의 80%를 차지하는데 우리는 기업의 기부가 67%고 개인의 기부는 16%밖에 안됩니다” 이 같은 수치까지 일일이 기억하는 스님이기에 염화실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인도 동북부인 비하르지역을 중심으로 수행과 전법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시대였다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고통 받는 중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동체대비행을 펼쳤을 것입니다.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받아들이고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여 나눔을 활성화한다면 그 자체가 ‘세상은 나와 한 뿌리요 모든 존재는 나와 더불어 하나(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임을 자각한 참살이일 것입니다. 진리와 더불어 항시 살아있는 현실 가운데서 구현되는 보살행 즉 이타행(利他行)을 통해 무한한 대우주법계와 하나가 되도록 나아가야 합니다” 스님은 대표이사로 있는 지구촌공생회의 자원봉사자와 후원인, 해외활동가등 모든 도반들에게 이같은 내용의 새해 인사를 전했다. ‘요익중생’을 서원하는 이들이 더욱 더 넘쳐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원이다.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프리카의 케냐와 비슷하고 가나의 30배, 아르헨티나의 5분의1밖에 안됐습니다. 지금은 가나의 30배, 아르헨티나의 2배에 이르고 있는데 이렇게 성장한 데는 국제개발기구의 협력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본부를 통해 북녘동포를 돕는데 앞장섰던 스님이 지구촌공생회라는 국제구호단체를 만들어 각종 구호사업을 펼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캄보디아에서 우물설치 사업을 펼치기 전 수인성 질병으로 고통 받던 어린이들이 80%였는데 우물이 설치돼 식수혜택을 본 지역에서는 오히려 80%의 어린이들이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생명의 우물’이 된 셈이다. 어려울 때 외국의 원조를 받아서 이만큼 잘살게 된 만큼 빈곤국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비용이 우리의 10분의 1이면 족하다고 한다. “일일생활권이 된 지구촌에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9억 명이 넘는 데 개발도상국에 대한 우리 한국의 공적재발원조(ODA)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인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유럽을 다니면서 나눔에 대한 인식이 체질화되어 있는데 큰 감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조차 우리 불교계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오직 자기 수행에만 푹 빠져있는 이들은 깨닫거나 지혜를 얻지 못한 채 중생구제에 나서는 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안목 없이 중생구제에 나섰다가 자칫 중생을 오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수행으로 지혜를 얻은 연후에 자비실천(보현행)에 나서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인의 수행과 중생의 고통을 나누려는 노력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설명했다. “수행과 실천은 새의 양 날개와 같은 것입니다. 자비의 실천만 앞세우고 수행을 등한시하면 맹목이 될 수 있고, 수행으로 지혜를 얻었다 해도 중생들의 고통을 외면하면 머리와 가슴만 있고 발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비의 실천 없는 깨달음이나 지혜는 의미가 크지 못합니다. 수행지상주의에 빠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구도의 본질은 이타행에 있으니 보현행을 함으로써 보리(菩提)를 얻고 더 나아가 해탈할 수 있다는 신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정치가 잘못 흘러가고 경제가 엉망이 되어 사람들이 희망이 없다고 하는 이럴 때일수록 종교 특히 불교만이라도 기쁨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법을 전하라’는 전도선언을 실천하려는 강한 신념이 느껴진다. 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월주스님과 지구촌공생회 / 지구촌공생회(www.goodhands.or. kr)는 북한과 제3세계 빈곤국가에 대한 구호 및 지원활동을 펼치기 위해 지난 2004년 2월 창립한 국제구호단체다. 28세에 교구본사인 금산사 주지, 30대에 총무원 교무부장, 45세 군사정권에 맞선 최연소 총무원장 다시 1994년 개혁종단의 총무원장. 경실련 공동대표, 지역감정국민운동협의회 공동회장 등 수십 개 단체의 대표를 역임하고 지금까지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와 복지법인 나눔의 집 이사장 등의 소임을 맡으며 축적해 온 포교 교육 가람수호 복지 시민운동의 노하우가 그대로 담겨 있다. 50여년 부단한 수행력으로 국경 없는 국제구호단체 결성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실천 초기불교시대에 사회적 유대감을 함양하기 위해 강조한 가르침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자비희사(慈悲喜捨) 이 네 가지의 한량없는 마음을 이웃과 나누기 위한 국경 없는 지구촌공생회다. 지난 한 해 활동만 해도 눈을 의심할 정도로 활발하고 다양하다. 후원자들의 보시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국제협력단(KOICA), 환경재단, 경기도청, 불국사, 화계사 등의 지원에 힘입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몽골, 라오스, 케냐 등 6개국에 식수공급사업과 유치원, 초등학교 건립, 도서관 운영 등 교육사업, 국내 독거노인 생활보조비 지원, 북한 돕기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여기서도 항상 주춧돌 역할을 해 주는 곳은 금산사와 영화사다. 때문에 스님은 김제 금산사와 서울 영화사를 오가며 법문하고 ‘아직 걸음마 단계인 지구촌공생회’를 거의 매일 챙기다시피 한다.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 그 어느 곳에서라도 실천행이 시작되는 그 순간 누구라도 기쁨을 느끼지 않겠는가?” ‘요익중생’의 굳은 신념이 있기에 스님의 팔순 때쯤 염화실을 찾으려면 지구촌 곳곳을 찾아 다녀야 할 것 같다. ☞ 출처 : 불교신문 : http://www.buddhistnews.net/